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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말 종로구청 앞에 한 건축주가 주상복합건물 사업시행을 위해 낡은 기존 건물들을 철거하고 있었다. 재개발 면적은 8665㎡.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3만㎡ 이상의 공사를 벌일 때 문화재 지표조사를 거쳐야 한다. 그러니 이곳은 지표조사 없이 공사를 진행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서울시내의 개발공사중 문화재 조사를 안하는 것에 문제를 느끼고 있었던 황평우에 의해 건물 기초석인 장대석(長臺石: 섬돌 층계나 축대를 쌓는 데 쓰는 길게 다듬은 돌)이 발견되었고, 즉시 문화재청에 ‘문화재를 발견했다’고 신고되었다. 언론보도가 나자마자, 도심재개발 때도 문화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삽시간에 형성됐다.

문화재가 발견된 이상 그대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전문가들의 입회 아래 문화재청 조사가 이뤄졌고, 본격 발굴에 들어갔다. 발굴 결과는 놀라웠다. 조선 초기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600년간의 서울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6개의 문화층이 정연하게 쌓여 있었다. 조선 건국~15세기 중반(6문화층), 임진왜란 전후(15세기 후반~16세기(5문화층), 17~18세기(4문화층), 18세기 후반~개항 이전(3문화층), 개항~일제강점기(2문화층), 해방이후~현대(1문화층)까지 모두 나타났다.

시전의 행랑(行廊)이 정연하게 노출되었다. 특히 임진왜란 시기인 5문화층에서는 30㎝의 소토층(燒土層: 불에 탄 흔적)이 쭉 깔려있었다. 이것은 임진왜란 때 종로시전을 비롯한 한양 전역이 완전히 소실되었고, 그 이후 한참 복구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준다.

이후 조선의 중심지였고 한양의 중심지인 종로일대에는 건물 신축시 문화재발굴 조사가 당연시되고 있다.

2005년 탑골공원옆에 육의전빌딩을 신축하려던 건축주는 난감한 상황에 부딪히게 되었다.
신축건물 예정지가 고려시대 원각사터와 조선시대 시전행랑(육의전) 유적이 존재할 것을 예측한 문화재청과 종로구의 요청에 의해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해야하기 때문이었다.

육의전건물 신축 예정지에 대해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시행되었다.

그 결과, 지표로부터 2m 이상의 깊이까지 지하구조물과 철거 등의 과정에서 훼손되었으나 그 하부에서 조선전기 2개층의 시전행랑을 비롯하여 건물지, 도로(피맛길), 배수로, 수로 등의 유구를 확인 할 수 있었다. 특이 할 만한 유구로는 조선초기 한성부 건설과정에서 태종연간의 초측된 시전행랑(2차 시전행랑)과 그 상부에 방화장을 두어 세종연간 이후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는 시전행랑(1차 시전행랑)이 확인되었다.

또한 시전행랑 뒤편으로 폭 3.4m 가량의 피맛길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맛길과 그 북측 건물지 하부로 동서방향의 목책시설을 한 수로도 확인되었는데 세조연간에 정비된 제생동천 혹은 그와 관련된 유구로 판단되었다.

문화재청은 보존을 결정했고, 건축주는 절망에 빠졌다. 건축주는 문화재보존운동가인 황평우를 찾아 도움을 구했고, 황평우는 지하에 유적보존 박물관을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신축하는 윈윈전략을 제공했다.

육의전박물관 조성을 위하여 육의전박물관 건립위원회(위원장 황평우)가 구성되었고, 국내외 연관 있는 유적전시관을 수십차례 견학과 연구를 하며 장단점을 분석했다.
또한 고고학, 민속(시장관련), 문화재 보존과학자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육의전박물관 조성을 위한 연구와 자료조사, 전시준비가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황평우는 육의전박물관 건립과 관련해서 무보수, 자원활동으로 유적을 보존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했다.

2010년 6월부터 약 1년간에 걸쳐 보존처리 된 유구가 박물관에 옮겨지기 시작했다. 2011년부터 건조과정에 들어갔으나, 건물주의 자금난과 전시업체의 부도로 인해 박물관 조성사업이 조금 지연되었다. 이후 황평우는 건물주에게 조속한 박물관 완공을 촉구하였고, 2012년 3월부터 본격적인 전시관이 조성되어 2012년 8월 완공하게 되었다.

육의전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살펴보면, 조선시대 서울 종로에 자리 잡고있던 여섯종류의 어용(御用)상점을 말한다. 육의전은 선전(線廛: 비단상점), 면포전(綿布廛: 무명상점), 면주전(綿紬廛: 명주상점), 지전(紙廛: 종이상점), 저포전(苧布廛: 모시·베 상점), 내외어물전(內外魚物廛: 생선상점)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나 육의전은 국역부담 능력에 의해 특권화된 시전으로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관청에 관한 부담능력과 정부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상업능력의 보유에 따라 변화되었다.

육의전 박물관의 전시구성을 살펴보면, 종로 중심에 위치한 박물관의 의미를 좀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탑골공원 옆 육의전빌딩 지하 1층으로 내려오면 육의전박물관 정문을 맞이하게 된다. 입구에서 관람료를 내고 덧신을 착용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관람을 할 수가 있는데, 인포메이션 오른쪽으로 박물관 건립과정을 표와 함께 설명하고 있는 패널과 육의전박물관 발굴에서 설립까지의 동영상을 발견할 수 있다

종로 2가와 3가를 가로지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육의전 박물관은 15C, 16C 시전행랑 유적을 발굴당시 모습으로 전시하고 있으며 유적을 가까운 위치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바로 위에 유리막을 설치하고 있는 아시아 최대의 유리막 유적전시관이라고 할 수 있다.

발굴 결과에서 보듯이 육의전 터에서 15C, 16C 시전행랑 유적이 발견되었다. 육의전박물관은 두 시기의 유적을 층을 두고 그대로 전시하였으며, 유적 위에 유리막을 덮어 관람객이 유리막 위를 걸으며 유적을 직접 관찰할 수 있게 하였다.

또 발굴 유적을 직접 관찰할 수 있게 공간을 구성하였다.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직접 유적을 관찰할 수 있다.

유리막 골조틀에 LED 조명을 설치하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밝고 선명한 유적을 관찰할 수 있게 하였고, 유물명칭은 투명한 재질에다 시기별(15, 16C)로 색상을 달리하여 선별감 있는 전시를 구성하였다.

육의전박물관의 유리막전시는 한국의 국.공립박물관을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크며, 더 나아가 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육의전박물관은 고고학 발굴조사 후 “토층”을 모범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고학 유적이 발견된 박물관이나 전시관은 대부분 토층을 보여준다. 고고학에서 토층을 보여주는 것은 발굴지역의 지하층에 퇴적된 역사와 문화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층전시는 토층을 떠서 그대로 전시만 하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나 학생들에게 흥미와 관심을 끌게 하기에는 매우 미흡했다.

육의전박물관 토층은 발굴지역에서 두 곳의(피맛길, 시전행랑) 토층을 떠내서 입체전시를 하였고, 토층표면에 시기구분선을 표시하여 일반 관람객의 이해도를 높였다.

또 토층과 토층사이에 시기별 역사적인 사건을 입체감 있게 표현하였고, 조명을 줌으로써 토층의 입체감도 주었다. 한마디로 토층전시의 대표적인 사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조선시대 15C 피맛길의 원형이 남아있는 유일한 박물관이다.

육의전의 6가지 시장 중 저포전의 기가 미국에 소장되어 있는데, 우리 박물관은 저포전기를 완벽하게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박물관이다. 저포전은 저포 즉 모시를 파는 조선시대 시전의 하나로 지금의 종로3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육의전박물관이 가지는 의미를 보자면 우리나라 보존과학의 새 전기를 마련하는 전시기법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발굴유구의 보존은 “문화재 노화와 붕괴에 따른 피해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사전에 예방하고, 붕괴되거나 노화 문화재를 수리, 복원하여 원래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라는 보존과학에서 사용하는 보존의 의미와 거의 같은 개념이다.

유구이전복원이란 발굴조사를 이용해 유구의 전체적인 형태를 복제하고 유구의 표면을 얇게 전사하여 복제된 유구형틀 위에 붙이는 방법을 말한다.

원형이전보존법은 보존 대상 유구를 원형 그대로 떼어 이동, 설치하여 보존하는 방법이다. 유구에 손상이 가해지지 않고 유구가 노출된다는 점에 노출현장보존법과 유사하다. 일반적으로 원형이전보존법은 「수리복원→분리, 틀 제작→분리→이전설치」의 공정으로 이루어진다.육의전박물관의 이러한 보존과학전시는 민간박물관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종로 한가운데 자리한 육의전 박물관이 가지는 문화적, 역사적 의미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도심 한복판에서 이뤄지는 대규모 개발과 문화재 조사 사이에서 가치의 충돌이 필연적일 수 있지만, 육의전박물관은 머리를 맞대면 가치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준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도심지 개발에 따른 발굴조사의 증가로 많은 유적들이 발견되어 지고있다. 이러한 유적들은 대부분 발굴 후 2차적인 도면실측 및 사진촬영 후 현 위치에 다시 묻었으나, 보존과학이 발전한 나라에서는 발굴된 유적의 중요성에 따라 다시 묻지 않고, 유적 그 자체를 이전하여 교육, 전시자료로서 이용하는 방법이 일반화되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종로 육의전박물관의 유적현장 보존은 조선시대 육의전 형태를 현대식 건물 내부에 복원하여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지금까지 유적을 다른 장소로 이전하여 복원하던 것과는 달리 현 위치에 보존하게 됨으로써 유구의 생명감을 부여하게 될 뿐만 아니라, 발굴유적 보존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어 문화재 보호에 대한 국민적 애호심을 가질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